'물대포 사망' 한국 정국 강타
지난 해 11월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불명이 된 농민 백남기(69)씨가 25일(이하 한국시간)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진상 규명과 공권력 과잉 행사 관련 책임론과 맞물려 가뜩이나 어지러운 한국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백씨는 지난 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이후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317일 만인 25일 오후 2시15분쯤 숨을 거뒀다. 서울대병원은 급성 신부전증이 사인이라고 밝혔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백남기 위원회)'와 야권 인사들은 조속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백씨 가족과 농민단체는 지난해 11월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살인미수(예비적 죄명 업무상 과실치상)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이 안전 규정을 위반하고 물대포를 백씨에게 조준해 직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고발 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배당됐으나 수사는 별 진척이 없는 상태다. ▶유족 및 시민단체: 시민들은 25일 오후 6시40분쯤 경찰이 진입을 허용하면서 서울대병원 빈소에 들어와 고인을 기릴 수 있었다. 이날 오후 8시까지 빈소를 찾은 각계인사와 시민은 약 1000여 명에 달했다. 빈소를 찾은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공권력이기에 더욱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세우겠다고 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오후 7시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제3주차장 앞에서 고인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를 열었다. ▶경찰: 서울 종로경찰서는 25일 백씨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중앙지법에 백씨 시신 부검을 위해 하기 위해 압수수색검증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영장 재신청을 검토 중이다. 유가족과 백남기 대책위는 "이미 사인이 경찰의 물대포로 인해 쓰러져 생긴 외상성뇌출혈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부검은 불필요하다. 부검은 백씨의 사인을 엉뚱하게 조작하려는 시도" 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여야는 백남기씨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했지만 야권은 진상 규명에, 여권은 불법 과격시위 재발 방지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였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은 끝끝내 사과를 거부하는데, 끝까지 경찰의 살인진압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은 "청문회를 통해 물대포 사용 명령체계가 엉망이었고, 당시 살수 담당 경찰이 현장 경험이 없는 초보자였음이 밝혀졌다"며 "제대로 된 검찰 수사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 고인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아 새누리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백남기 농민이 운명을 달리 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안타까운 일이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백남기씨는=1947년에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 제적 당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교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5·17 쿠데타 이후 계엄군에 체포돼 다시 대학에서 제적 당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가석방 후 귀향한 그는 농민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